2011년 9월 24일 토요일

금오산-신라유적 탐방기


금오산-신라유적 탐방기
경주 남산을 오르고 쓰는 문화탐방 산행기 

조인스 블로그뉴스에서 허락받고 퍼온 글 입니다.
원본: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pandoracube&folder=5&list_id=12351190

2011년의 여름도 막바지에 접어든 8월의 셋째 일요일 경주 나들이를 했다.
경주는 부산에서 거리상으로도 지척이고 관광지로서도 하루를 즐기기 좋은곳이기 때문에 수없이 가는 곳이지만 ,이번에는 남산의 문화유적 답사를 위한 산행겸 나들이 이다. 
경주의 금오산은 남산의 여러 봉우리와 계곡 중에서도 신라가 불교국가로 존재했던 혼적들이 가장 많이 서려있는 불국-신라역사의 집합인 곳이다.
한 여름 잠긴 몸을 풀고 곧 다가올 가을의 깊은 산행을 위한 워밍업 같은 산행 코스를 찾던중에 높이도 적당하고 가벼운 등장으로도 오를 수 있는 그리 험하지 않은  산으로서 신라 역사도 탐방할 수 있는 금오산을 택했다.

골마다 새겨진 유적지도 탐방하고 등산도 하며 하산해서는 가까운 포석정,안압지등을 경유해서 하루를 보내기 딱 좋은 나들이 코스 이다.
산행하면서, 휴식하면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주분들이 아닌 것으로 볼 때 나와 같은 생각으로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과연 경주는 문화-관광의 도시임을 실감 했다. 
아침을 일찍먹고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운영하는 경주의 서남산 주차장에 도착한게 오전8시 좀 더 됬을 것 이다.
(참고:주차비2000원-무제한 시간 파킹).
간단히 등장을 점검하고 일상적으로 산행전에 챙기는 식음료와 안내도등 현지에서 듣고 참고 해야할 지도나 설명을 문화유적-해설사와 함께 대형지도 앞에서 약간의 이야기를 들으며 준비를 했다.
이후 해설사와 함께 하기는 여러 가지 시간상 또는 등산취향상 맞지 않는 것이 많아서 행동을 단독으로 했다.
일기 예보로는 전국이 흐리고 일부 비가 온다고 해서 늦여름 작열하는 태양 보다는 한결 좋을거란  생각을 했지만,
산행 들머리 노송림에서 부터 바람한점 없이 다슾한 숲속 공기는 답답하고 갑갑했다.

남산 에서도 금오산이 가장 많은 유적이 발굴된 상태이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 택한 삼능계곡으로 올라서 용당골로 하산하는 코스에 볼 만한 불교 유적이 집중되어 있다.

사실 신라유적중 대부분은  불교유적이며 불교 유적이 곧 신라와 통일신라에 걸친 역사적인 유물이기 때문에 이는 어떤 종교를 위한 탐구처럼 보이지만 그  이전에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경주-문화유적은 이루어저 있다. 

또 오래된  역사중 특히 신라의 기록에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 들이 대부분 유실되어 구전에 의존 하는 것 이 많지만 그나마 기록으로서 보존된 것들은 그 저작자가 승려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기록이 불교적 기초로 쓰여질 수 밖에 없고 유물 또한 불교를 기초로한 작품이며 종교적 신앙의 대상물 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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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이 너르고 깨긋하며 잔디로 바닥이 파란색깔이 나서 기분도 좋고 주차요금도 저렴하다.
여기를 나와 맞은편에 안내도우미와 큰 산행 지도가 있고 안내부스에 작은 유적지 지도를 얻을 수 있다.
취향에 따라서 문화유적 해설사와 함께 무리를 지어 답사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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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지도에서 동그라미 표시가 된곳을 거치며 산행을 하려 한다.
이 이외에도 이 골짜기엔 많은 유적이 더 있지만 산행 코스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아쉽지만 다음에 보기로 하고 생략했다.  
남산은 금오산과 고위산과 쌍봉으로 이루어저 있지만 오늘 오를 코스는 지도에서 보이는 금오산 471M를 등산할 것이며  495M의 고위산 보다는 약간 낮지만 유물의 분포나 량으로서 앞도적인 문화유적지이다.  
하산은 최종 도착기점 용당마을 버스정류소로하고 거기서 택시나 버스로 약 3KM정도의 거리인 주차장으로 이동 한다.
나는 버스가 금방 지나간후 도착해서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이용했으며 택시기사는 왠진 몰라도 메터를 꺽진 않았고 요금 3000원을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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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능 입구의 등산로 초입에는 천년역사를 말하듯이 노송들이 휘감겨 하늘을 덮고 있으며 정취가 아주 좋다. 
삼능입구에서 삼능을 보고 바로 산행을 해도 되지만 보물제63호 배리-석불-입상을 보기 위해 삼불사 까지(왕복1Km)갔다가 되돌아 왔다.
삼불사  석조입상은 자세히 보면 상당히 특이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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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개의 돌부처는 삼불사(三佛寺)옆에 있는데 이부근 선방사(禪房寺)터 부근에 흩어져 방치된것을 1923년 모아서 세워 전시하는것이다.
중앙의 불상은 극락 세계의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이며,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이거나 해학정 으로 보이는 너른 얼굴과  둥근 눈썹, 다문 입, 통통한 뺨등의 따뜻한 모습은 자비를 말하는 불성(佛性)그 자체를 조각으로 충분히 표현 한다고 느낄 수 있다. 
왼편은 자비그 자체인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이며 여느 조각처럼 보관을 쓰고 역시 미소를 띠고 있다.
이 삼존불은 여느 삼존불과는 좀다른 얼굴이며 어쩌면 보통사람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 자비를 말하는진 모른다.
전문가들은 전체적 조각의 구성이나 양식으로 볼 때 삼국말옆인 7세기의 작품으로 추정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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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삼불사 석불 입상을 보고 되돌아와서 삼능을 본다.
삼능이 입구에 있기 때문에 이 계곡을 삼능계곡이라 하며 입구 주차장도 삼능 주차장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계곡은 한여름에도 쉬원한 냉기가 가득해서 냉골(冷谷)이라고도 한다.
이 계곡에는 11개의 사찰흔적과 15위의 불상이 있다.
 삼능의 주인은
 신라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는 것이며 이를 배리 삼능  이라 하며 (경북 사적 제219호,행정구역: 경주시 배동 산73-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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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목없는 여래좌상은 냉골 여래좌상이라고도 하며 머리가 없고 무릅이  없지만 몸체의 잘 보존된 조각과 그 조각이 표현하는 섬세한 복식 및 신라인의 의복 구조가 아닌가 하기도 하지만 , 흔치는 않으마 시대적으로 신라때가 아닌 석불에서도 수실이 늘어진 영총을 한 가사가 있기 때문에 연구자료로서도 유명한 불상이다.  .
모습을 드러 낸 것은 계곡에 매몰되어 방치된 것을 1964년 동국대학교 역사 발굴팀이 발견한 것이라고 하며 현재의 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목이 없어지고 무릅이 훼손된 시기나 이유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다. 


때로는 일제때 일본인이 햇고지 한 것이라는둥 낭설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훼손된 것이며 아무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이 계곡에 있는 수많은 석조물들중에 마애불을 제외 하고는 대부분 처첨하게 조직적으로 훼손당한 어떤 시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체적인 불상의 형태는 굉장히 당당한 모습이며 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옆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조각을 누가 왜 이처럼 참혹하게 훼손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훼손한 사람과의 뜻과는 반대로 훨씬더 유명해 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 해 본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1호인 이 선각육존불은 보기드문 불화로서 바위에 불상을 조각하지 않고 그림으로만 선으로 각인했다.
그림 자체가 윤곽이 부드럽고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표현된 미술품이다.
옆에 또 삼존 선각이 있기 때문에 육존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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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계곡에서 가장큰 마애선각관음보살은 높이 7M의 마애불이며 금오봉을 향하고 있다.
윗부분은 입체불에 가깝게 바위에서 조각되어 두드러저 있으나 아래로 내려올수록 선각으로만 이루어진 마애불이다. 
전체적으로 거칠기는 하지만 미려하고 온화한 분위기이다.
여는 경주의 불상들 처럼 기풍이 있고 특히 대형 불상이 주는 웅장함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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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행은 쉬엄 쉬엄 쉬어가며 도처에 산재한 불상들을 감상하며 천천이 걷지만 워낙 슾기많고 곧 쏟아질 듯 잔뜩 찌프린 날씨 때문에 오르면서 이미 가지고온 물 두병을 다 마시고 이 상선암에서 쉬원한 자연수 두병을 채우고 목을 추겼다.
얼핏보기에 여는 시골 가정집 같은 절 이지만 교통 불편한 위치에 있는 작은 암자이지만 안을 들여다 본 내부는 깨끗하고 잘 정돈된 단아한 법당이 마련되 있는 기도하고 싶은 암자이다.

나 뿐만아니라 여기까지 오른 많은 등산객들이 합장하며 법당을 들리는 모습 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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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을 돌아 좁은 통로의 암로를 지나고 이윽고 오늘산행의 정상을 만났다.
정상에서 보는 경벌은 너르고 한 나라가 도음할 만큼 풍부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농지가 끝없이 펼처지고 있다.
건천을 따라 쭉 뻗은 강물따라 경부고속도로가 굽이굽이 보이고 경주 톨게이트를 지나 숲길이 경주 시내쪽으로 보이지만 경주 시내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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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용당골로 내려갈 것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부근에서 제일높은곳인데도 바람한점없고 찌프린 날씨는 결국 간간이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쏟아지지도 않고 지뿌린 날 바람도없는 무더위는 산행중에 최악이다.
그래도 이제는 내리막길이라서 좀 덜하다.
정상에서 하산하는길은 잠간동안 순환로와 만나고 편한길을 걷다가 갑자기 수직하강하는 코스를 두세 번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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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암벽경험이 없는 사람이 매달리며 뒷발을 땅에 대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이다.
그래도 요즘 등산화는 미끄럼 방지가 얼마나 잘되 있는지 무릅을 다치지는 않고 용케 내려 왔다.
내려가는 용장골은 남산의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로서 가장큰 계곡이며 용장사지를 비릇해서 18곳의 사찰터와 7기의 석탑과 5위의 불상이 있다.
정상에서 약 400m아레에 용장사지가 있고 그사지를 미치기전 정상 가까이에 허공에 솟아있는 삼층석탑은 주위의 산봉우리와 함께 장관을 연출한다.
어떻게 그 옛날 신석공들은 이렇게 높은 정상가까이 난간에 거대한 석탑을 쌓을 수 있었는지 그 도구가 무었이었는지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누구 말 처럼 정말로 도력으로 '으앗' '야앗' 하며 한손을 올려 놓은 것 이라면 몰라도 그 방법이 상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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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다보면 이런 곳  부근에는 도사 끼가 있는 사람들이 더러 도사 같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을 가끔 보게 되는데.역시나 여기에도 이 산에 대한 내력을 졸졸 외우며 천길 낭떠러지에 이상한 모습으로 위험하게 앉아 있는 것을 목격했다.
이 탑의 이름은 경주 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慶州 南山茸長寺谷三層石塔)이다.
영어로도 표기하는데 어째 좀 어울리지 않지만 Kyeongju NamsanYeongjangsagoksamcheungseoktap 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지정번호는 보물 제186호이며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 1-1번지이다.
4.42m의 높이이며 화강암으로 다듬어진 통일신라시대의 미술품이며 문화 유적이다.


현재에도 남산 서쪽 산중턱에는 용장사터는 남아 있다.
용장사는 신라시대 창건된 사찰이며 경덕왕(재위 742-765)대에는 불교 종파중에서  유가종(瑜伽宗)의 대덕(大德) 대현(大賢)이 살았던 곳이다.
이는 유가조(瑜伽祖)라 불릴 정도로 유식(唯識)과 인명(因明)에 통달하여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까지도 그의 저서를 참고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그가 용장사에 머물렀던 시기 일화를 적은 기사가 있다.
대현이 이 절의 장육상 주위를 돌며 예배할 때는 불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출가해서 이곳에 와서 기거하며 그 유명한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쓴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보면 남산의 산봉우리들이 전부 전개된 것을 볼 수 있고  중간부근에 돌출한 바위 덩어리가 있는데 이 아스라이 벼랑을 이루는 곳의 바위를 파고 탑을 우뚝 세운 것 이다.
이 탑은 1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갖추고 장식이 없으며 형식이 단아한 신라 말기의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이라고 한다.
(문화재청 참고).

이 조탑방식은 산봉우리 전체를 탑의 기단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형식이다.
불탑의 무한적집(無限積集) 또는 공덕적취(功德積聚) 등의 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한 불탑 자체를 우주의 축(軸)으로 생각하는 신앙형태이다.
기단은 불교의 우주관으로 설명되는 수미산(須彌山)으로 보고 이해한다면 조금은 접근이 된다.

지리산 법계사(法界寺)삼층석탑, 충북 영동의 영국사(寧國寺) 망탑봉(望塔峰)삼층석탑과 같이 고려시대에 비보사상을 기반으로 조성된 석탑들은 이 용장사석탑을 필두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붕괴되어 있는 것을 1922년에 재건 했으며  2층옥신 윗면에서 15.2cm×3.1cm의 사리공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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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문화유산들이 아름답고 뛰어나지만 용장사 계곡으로 내려오면서 만나는 이 석조물들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자연과 더불어 잘 매칭된 위치에 아름다운 미술품으로 자리한 이 석조물들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보는순간 경외심을 자아 내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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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용장사곡 마애여래좌상 이라고 하며 보물제 913호이다 .
아래 석조여래 좌상의 오른쪽 바위벽에 수 놓듯 새겨진 아름다운 미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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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곡 삼층석탑을 뒤로하고 조금아래에 삼층석탑으로 오인할 만큼 잘 다듬어진 원형의 대좌는 바위로 구성된 자연기단위에 3층오로 마련된 대좌를 깔고  연꽃무뉘로 장식된 대좌위에 놓여있는 석조여래좌상이다.
비록 목의 윗부분이 없지만 불두가 없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남은 부분의 몸체만으로도 너무나 우수한 질감과 안정된 좌상이 보는이를 숙연하게 한다.
이 여래좌상과 위의 삼층석탑은 멀리서 보면 돌출된 벼랑에 스카이라인을 뚫고 자연과 더불어 하나의 조형물로 잘 매치가 되는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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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름다운 미술품이 교통이 편리해서 누구나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평지에 있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한 발품을 팔고 그 발품을 팔며 힘들고 땀흘리고 참으면서 공양하는 가난한 마음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기대문에 여기가지 오는동안 많은 사람들은 겸허해지고 삿된 마음을 정화하며 비로소 만날 수 있게 하지 않는가? ...

이 불상을 본후 곧바로 수직에 설치된 로프를 타고 내린후 검고 두꺼운 구름 한겹이 덮치더니 굵은 빗방울이 장대같이 쏟아진다.
카메라며 휴대폰이며 밧테리를 제거하고 비닐로 감사서 배낭깊은곳에 숨기고 바람옷으로 덮고 나무밑에 쉬었다.

소나기는 피하라는 말대로 하산을 멈추고 한참을 쉬다가 거짖말처럼 날씨가 맑아진후 완전히 하산했다.
카메라와 휴대폰을 꺼네서 바위위에 한참을 말린후에 어느 산인이 쌓은 작은 돌위에 젖은 날개를 말리는 잠자리 한 마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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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후 막 피어 오르는 버섯이 예쁘다.

부산으로 가면서 아직 시간이 여유로워 가까운 포석정을 들렸다.
그옛날 보던 포석정은 상당리 컷다고 생각하는데 왜이리 작은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렸을 때보던 것들을 다시보면 그렇게 작게 보인다.
포석정 옆의연못과 비온후 햇볓을 받으며 싱그런 과일들이 막 익어가고 예쁜 꽃들이 피는 텃밭을 돌아서 경주에서의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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