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1일 월요일

문무대왕 수중릉-대왕암::블로그 에쎄이

문무대왕 수중릉-대왕암: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의 수중릉 .

부산출발 동해안 해안루트를 따라 경주까지 마치고.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작은 돌섬 대왕암은 신라 문무왕(661~681)의 수중릉(水中陵)으로 전해지는 장소이다.
행정구역 주소 경북 경주시 양북면(陽北面) 봉길리(奉吉里) 26번지.

봉길리 에 봉길리 해수욕장이 있고 해수욕장에사 약 200m 떨어진 동쪽의 바위섬을 말한다.
사적 제158호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명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한다.

여행자들 이나 역사 탐방자들은 울산의 대왕암과 많은 착오를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경주시나 울산시에서 이점을 고려해서 구별되는 명칭을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삼국통일을 달성한 문무왕의 유언 즉 "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교의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어주면 해룡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고 한대로 그의 유해를 지금의 봉길리 앞바다 동해쪽으로 대석(大石)에 장사 지냈으며, 이후 이곳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바위의 모양은 사방으로 +자형 수로(水路)를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동해쪽 수로에서 파도를 따라 물이 흘러 들어와서 서쪽의 수로를 통해 빠저 나가게 되어 있는데 이 구조는 인공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안에는 상당히 넓은 공간 이 있고 공간 가운데 큰 돌이 있고,
수면이 그 돌을 약간 덮을 정도라고 한다.

유골이 이 돌 밑에 안치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미확인 불확실한 개인적인 생각임.)

이곳에서 대종천을 따라 약간 내륙쪽으로 가다보면 오른 쪽에 감은사지가 있는데,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부왕의 뜻대로 장사지낸후  감은사(感恩寺)를 창건하여 불력(佛力)으로 동해의 왜구를 막고,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하려 하였다.

감은사 금당 (金堂) 아래에는 동해를 향해 구멍을 뚫어두었고,
이는 조수가 금당 밑까지 들어올때  용이 된 문무왕 이 수로를 따라 금당까지 드나들 수 있게 하려 했다고 한다.

대왕암 수중 내부를 공식적으로 발굴한 내용은 찾아 볼수 없었으나,
수중 장지의 사방 수로를 설치한 것으로 볼때  흔히 보는 사리(舍利)탑의 형식대로 하려 한것으로도 본다.

나당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후 태종무열왕 이후 21년간 재위기간에 668년 고구려 까지 멸망시킨후,  
한반도를 욕심내는 당나라를 676년에는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다만 호시탐탐 귀찮게 구는 왜구를 섬멸하지 못한 대왕은,
죽어서도 후손들을 위해 호국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수중릉에 매장했는지 분골을 그 부근에 뿌렸는지,
정확한 사실은 모르지만,
불교식대로 화장해서 동해바다 이 부근에 장사진낸것은 감은사 등 기록과 유물로서 확실하다.
그리고 수중왕릉이 사실로 볼대 이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곳이라고 본다.
 
문무왕의 간략을 보면 부왕 무열왕(武烈王)의 장자이며 ,
어머니는 김유신(金庾信)의 여동생 문명왕후(文明王后)이다.

태종무열왕의 왕위 계승하고 백제정벌(606년),고구려정벌(668년)에 성공한다.
외세를 등에 업고 승리한 전쟁이 끝난후엔 당나라를 축출한다.

한반도를 통일한 최초의 왕이다.
참고:삼국사기 문무왕 21년(681)조

관련된 역사 유적:
대왕암, 감은사, 이견대,

가까운 유적 신라고찰 기림사, 불무도 선무도장 골굴사,국보인 장항리사지,

감포에서 부터 봉길리 해안 전체는 해안경관이 좋고 특히 이어지는 대종천은 은어가 노는 맑은 물이흐른다.
연해 있는 송림 또한 여름엔 피서지로 좋다.

숙박한다면 동해의 깨끗한 일출을 경험할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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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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