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7일 화요일

창녕고분군을 걸으며..

가야 왕(王)들의 저택?사이를 걸으며.:



한반도에 일본이 지배했고 그들의 지배 부가 있었다고 우기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을 추종하는 일본인들의 허무맹랑한 집염으로 무덤들 파고 회손했지만 진실은 그들에게 굴욕만 안겨준 현장이다. 

도굴로 인해서 고분의 속은 텅 빈 채로 비화가야는 시간 속에 잠들고 있는 역사로 남아있다. 
지금도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야유물 가운데 창녕이 출토지로 된 많은 유물이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금동관, 금동제 관모(冠帽), 금은장식 환두대도(環頭大刀) 같은 왕들의 위엄을 나타내는 중요한 우리의 역사 유물들은 하루빨리 되돌려 받아야만 한다. 

이 땅에 존재했던 비화가야-비사벌국이라는 신라와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5세기 중반에 엄연히 존재했던 힘과 권세가 막강한 지배자가 통치했던 하나의 국가로서의 이곳 역사가 올바르게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18년 초봄 아득한 역사의 흔적이 엄연한 교동 고분군 탐방기를 마친다.
창녕고분군


출처: http://omnislog.com/1184 [Omnis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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