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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위상을 보여주는 지산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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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위상을 보여주는 지산리 고분군 : 대가야의 고장 고령박물관과 지산리 고분 탐방 대가야 박물관 - Museum of Daegaya 탐방. 경북고령군 고령읍 대가야로 1203 지산리460 전화 054-950-6071~3 ■ 가야국은 어떤나라인가? 가야국의 시조,수도,존재기..

말모양뿔잔-5세기 유물::블로그 에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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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양뿔잔-5세기 유물::블로그 에쎄이 말모양뿔잔 가야문화의 진수를 본다-복천동고분 복천동고분 7호분에서 출토된 말모양뿔잔은 현재 우리가 보드라도 감탄할 만큼 추상적이기도하고 특이하게 만든 그때 그사람들의 작품이다. 그시절 5세기경이라면 언듯 생각하기는 형편없는 문화수준의 미개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생각할수도 있으나 출토된 유물들로 볼때 현대교육을 받고 전문적으로 만드는 어느 예술가의 작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우수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술잔을 만드는데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게 아니고 당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인 말모양을 카피해서 만든것이다. 현대인들이 이렇게 만든다면 예를 들어서 페라리모양 술잔이나 BMW모양 술잔에 비교할 수도 있다. The Ancients Cultural relic of KOREA N0 7 Tumulus  Bockcheon-dong BUSAN 5 Century , 한국의 고대문화유산, 말모양뿔잔 5세기, 복천동 제7고분 출토, 韓国古代文化遺物, 韩国古文化遗存 출처:  http://dramatique.tistory.com/2314  [블로그 에쎄이]

천만리(千萬里) -조선충신(忠臣)-충장공(忠壯公)-화산군(花山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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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충신(忠臣) 충장공(忠壯公)이 된 화산군(花山君)천만리(千萬里) : 조선충신(忠臣)이 된 명(明)나라 장수 천만리(千萬里). 부산  자성대 기념비로 보는  근대사의 인물 조선 충신  화산군(花山君)  충장공(忠莊公) 천만리(千萬里).   근세사의 귀화인물  천만리(千萬里) 장군은 무신으로서 명(明)나라에서 귀화한 이국인(異國人)이지만 대를 이어 조선조정에서 충신으로 살았으며 충장(忠莊)이라는 시호를 받고  전국각지에 조정이 배향하는 인물이며  [ 두산백과 - 천만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천만리]  [인명사전 - 천만리 ]. 등에  등재 소개되고 있는데 공부하는 자세로 알아봅니다. 장군은 중국 하남성의 영양(潁陽)이 본관인데 중국에서의 가계도는 알려지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선  영양천씨(潁陽 千氏 )의 중시조입니다.  무신으로 귀화했지만 문신으로 여생을 살며 저서로 시 44수와 문 2편이 '사암천문집'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군은 명나라의 수위사 겸 총독장(守衛使兼總督將)으로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전공을 세우고 귀화하여 한국 영양 천씨의 중시조가 되었으며   충장공(忠壯公)시호를 받은 조선조정의 충신(忠臣)입니다 . 정유재란(丁酉再亂)은 1597년 8월 도요토미 정권 일본군이 임진왜란의 정전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재차 조선을 침공하여 이듬해인 1598년 연말까지 지속된 전쟁임. SONY | ILCA-77M2 | 1/80sec | F/4.5 | 18.0mm | ISO-100 | 2015:12:02 06:02:58 자성대 이하 장군의 대략(大略)과 행적을 알아봅니다. 숙종조에서는 공적을 기리기 위해 ‘대보단(大報壇)’을 설치 종향(從享)했다. 고성(固城)의 호암서원(虎巖書院- 호암사(虎巖祠) ), 청도(淸道)의 황강서원(皇岡書院 -...

BC,AD 서기(西紀),세기::블로그 에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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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AD, 서기(西紀) 세기  ::블로그 에쎄이 BC,AD,서기(西紀),세기 서기(西紀)는 서력기원(西曆紀元)의 약어로서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이를 기원(紀元)으로 삼고 그해를 원녕으로 계산하는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용해 온 책력 기록 방식이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그레고리력의 1년을 기원으로 하는 시작하는 해로 삼고 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용을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약어도 영어로 Anno Domini (주의 해(年))를 첫자를 취해서 AD로 표기한다. 즉 예수가 탄생한 해를 기원으로 하여 이후를 AD 이전을 Before Christ (예수 이전)줄여서 BC로 표기 사용한다. 기원후 AD(Anno Domini -주의 해(年))나 기원전 BC(Before Christ-예수 이전에)이 처음에는 특정 종교의 책력이지만 전세계가 역사 연대를 표시 할 때 공통으로 사용 하면서 이제는 특정 종교적인 책력으로 인식 하기 보다는 보편적인 책력으로 인식 사용 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주의 해 라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며 보편적인 서기 즉 기원후(기원 원년 이후)로 사용하고 있다. 사전적 유의어로서  서력기원, 에이디, 주후가 있다. 그리고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점으로 한다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예수가 태어난 시기가 역사적으로 이 때와 혼선이 초래 될수 도 있음으로 종교적인 날자로 보지 않고 보편적 연호의 기록 방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 하다고 생각한다. 아예 BC나 AD를 대체할 연호를 고안 하려는 시도와 타 종교의 연호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글로벌 역사 시기를 공통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이미 널리 사용 중인 BC나 AD를 사용 하는것이 많은 융통성 면에서 득이 되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고유의 연호 보다는 서력기원을 사용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 특정 종교와 밀접한 연호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종교와 상관없는 단순한 연대표기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달리 생각하지 ...

가락국(駕洛國)의 황세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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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駕洛國)의 황세바위 봉황대에서 만난 황세바위의 슬픈이야기 김해시의 역사유물이 조밀하게 남아있는 중앙부근에 있는 봉황대에서 황세바위를 본다. 황세바위 이야기는 슬픈 내용이지만 함께자란 소년들의 순수한 모습들을 연상케하는 바위이다. 아래 사진으로 보는 황세바위는 가락국 제9대 겸지왕(숙왕)때 황정승의 아들 이름이 황세인데 황세가 놀던 바위라고 해서 황세바위로 불린다.  당시에 황정승과 출정승이 있었는데 둘은 절친해서 아들을 낳으 면  의형제로 살게하고 아들딸이 나면 배필로 살게 하자는 약속을 한다. 이후 황정승은 아들을 낳고 출정승은 딸을 낳는데 갑자기 출정승의 가세가 기울어 몰락하게 되어 배필로 보내지 않으려고 아들이라고 속여서 아들처럼 키운다. 황세와 여의는 형제처럼 함께 자라는데 사내 아이들이 잘 하는 오줌멀리 누기를 당시에 황세와 여의도 이 바위위에서 누가 더 멀리 오줌을 누는지 시합을 한다. 여의는 기지를 발휘해서 삼대 (경상도방언으로 제릅대)를 끼워서 사내처럼 오줌을 멀리 눈 이야기가 전해오는 바위이다. 둘은 점점 자라서 여의가 여인의 형태를  띨 때쯤 황세가 이상이 여기고 거북내(해반천)에서 멱을 감자고 한다. 여의는 더이상 속일 수가 없어서 여자임을 밝히고 둘은 결혼하게 된다. 그후 황세는 신라와의 전쟁에 나가서 큰 공을 세우게 되어 왕명으로 유민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이후 여의는 크게 상심하여 황세를 그리워하다 죽게된다. 황세 또한 상심하여 병을 얻어 같은해에 세상을 떠난다. 유민공주 또한 상심해서 유민산(임호산)의 사찰로 출가하여 여승으로 여생을 보낸다. 지금도 나즈막한 구릉지 봉황대에는 행복했던 황세와 여의가 소년으로 놀던 이 바위는 천년도 더 지난 지금도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애틋한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봉황대 한켠에는 여의의 넋을 기리는 여의각이 있어 마음을 짠하게 한다. 가락국 대략 : ...

공룡천지-태종대::블로그 에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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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천지-태종대::블로그 에쎄이 태종대 공룡발자국 우리나라 남부지역은 수많은 공룡들이 서식했던 공룡천지 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태종대에도 공룡 발자국이 있었네요. 가끔 놀러 가지만 절리의 아름다운 풍광만 보았는데 이번에 자세히 보니까 공룡발자국이 지천에 널려 있었네요. 공룡은 약 2억 5천년전의 중생대에 살았던 크고 작은 육상 파충류를 말한답니다. 과거 시기중에서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나누고 있는데 그 시기 중에서 공룡들은 트라이아스기 다음에서 부터 백악기 후기까지 지구에 살았다고 알려 지고 있습니다. 이 공룡을 연구하는데는 화석으로 변한 공룡의 뼈들로 부터 공룡의 과거를 알아보곤하지만 바위에 찍혀있는 발자국으로도 많은것을 추정해 낸다고 합니다. 키 덩치 몸무게 등을 이 발자국으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 휴일 태종대 신선바위에서 담아온 공룡발자국 사진입니다. 이곳은 절리 지대로서 하겹 한겹 벗겨질때 마다 지구의 오래된 과거거가 블랙박스처럼 모르고 있던 지구역사를 말해 준다고 합니다. 태종대는 절리가 잘 보존되어있고 단면은 바다에 접해저서 사람들이 훼손 할 수도 없는 좋은 지구역사탐구 지역으로 볼수 있답니다. 태종대에 남아있는 공룡들의 흔적은 백악기 후기에 존재했던 공룡들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고성에 있는 공룡들의 흔적은 이보다 좀더 앞의 것들이구요. 한반도 남부지역은 그당시 거대한 호수지역이었는데 점점 융기해서 솟아오른 지역이라고 합니다. 공룡 발자국의 크기는 옆의 사람발디꿈치를 보면 가늠할 수가 있겠네요. SONY | ILCA-77M2 | 1/250sec | F/8.0 | 18.0mm | ISO-100 아래는 겹겹이 쌓여있는 질리지대의 단면입니다. 철분이 많아서 붉게물들며 추상화같은 모양으로 기묘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SONY | ILCA-77M2 | 1/250sec | F/8.0 | 28.0mm | ISO-100 태종...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과 감나무::Omnis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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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과  한겨울감나무 충열사엔 부산 동래지역의 애국선열들이 배향되고 있는 곳이다. 대표적으로 동래성이 함락될때 전사한 송상현부사(당시동래부사)를 배향하고 있다. 당시 부산포에 일찍이 보지못한 수많은 군선들이 새떼처럼 몰려 와서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동래성에 다달았을때, 숫적으로나 병기로보나 어림없는 군사력이지만 성루에 올라서 용감하게 싸워서 전사한 분이다. 아래 석조물에 새겨진 전사이가도난 戰死易假道難은  전장에서 적과 마주하는 그분의 자세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일본은 다음날 수만명을 이끌고 동래읍성으로  진격한다. 假我途(가아도)란 글 즉 길을 비켜라고  쓴 깃발을 들고 성문에 나타나서 농성하는 왜군에게 송부사는 假途難 이라고 쓴 팻말을 성 밖으로 던져서 왜군에게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당시 군-관-민 심지어 기생들도 한몸으로 싸우다 전원 사망한다. 싸워서 죽는 것은 쉽지만 길을 비키는것은 어렵다는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 겨울인데도 떨어질줄 모르는 감나무가 송상현부사의 혼을 말 하듯 조랑조랑 가을에 익은 그대로 붙어 있다. 충열사 탐방차 들리는데 입구 경비실 뒤에 감나무에 감은 신기하게도 붙어있다. 저 감나무는 겨울인줄 모르는지 날시가 따뜻하니까 아직도 가을인줄 아는지.. 안타까운 송부사와 동래성 군관민의 마음을 기려서 떨어질수 없는것인지 ...

중요 무형문화재 알아보기(2)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중요 무형문화재 알아보기(2)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1964/12/7일 지정)  보유자:성경린(成慶隣)외, 종묘제례악보존회. 유네스코(UNESCO) 세계 문화유산 걸작.   중요 무형문화재 알아보기(1)석전대제[釋奠大祭]바로가기   종묘 제례(宗廟祭禮)는 유교절차에 따라 거행되는 왕실 의례이지만 동양(조선)의 기본이념인 '효'를 국가차원에서 실천하고 백성에게 보요주며 예법의 공동의식적인 차원에서 전 백성과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효'를 토대로 하여 국민적인 법질서까지를 토출한 행사라고 볼수 있다. 종묘라는 우수한 장소에서 거행하는 종묘제례의 장엄하고 정제된 아름다운 예식은 그 행위만 보아도 지극히 동양적인 하나의 예술이라고 볼수 있다. 이는 500녀년의 긴 시간동안 유지되는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이다. 유교사회에서 중시하는 오례(五禮) 즉, 길례(吉禮),흉례(凶禮),군례(軍禮),빈례(賓禮),가례(家禮)중에서 으뜸은 '효'에 있다고 한 길례(吉禮)를 중심으로 치루는 예식이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이재범(李在範), 종묘제례보존회 현재 서울 종묘에 봉안된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제사를 지낼때에 행해지는 음악,노래,춤,등의 일체를 일컬어서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라고 하며 세조 10년(1464년)에 발원된 행사이다. 세계걸작으로 인정된 우리나라 무형문화제 제1호이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있는 종묘에서 매년 지내는 제사를 종묘 제례(宗廟祭禮)라고 하며 이 의식은 무형문화재 56호로 지정되 있으며,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류 구전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 있다. 종묘 제례(宗廟祭禮)는 특별한 음악과 춤 등이 함께 진행되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라는  제향의식이 있으며 이 종묘제례악은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을 근간으로 하여 크게 나눠 기악과,성악과,무용으로 이루어진 제례음악이다. 2001년 5월 18일에...